지난 10월, 바라고도 바라던 독일 의사 면허를 얻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 여전히 무직이었고, 통장 잔고는 떨어져 가고 있었고, 급기야 둘째 아이의 출산이 목전에 다가왔다. '무직'에서 '의사면허가 있는 무직'이 되었을 뿐. 의사 면허를 얻는 것은 은 마치 '그렇게 공주와 왕자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책식 엔딩에 가깝다. 거기가 끝이 아니란 것을, 성인이라면 다 알고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전공했던 과는 독일에서도 TO가 많지 않아 애초에 채용 공고 자체가 거의 안났고, 공고가 나더라도 대부분 현지 경력이 있는 경력직들로 채워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글에서도 한 번 언급은 했었지만, 독일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브란덴부르크를 떠돌다가 베를린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특정 과의 전문의였지만 여기서 나는 갓 의사면허를 취득한 아저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의사면허를 얻고 일을 구해야 하는 시점에서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내가 일하고 싶은 병원'을 좆아가느냐, 아니면 '나를 필요로 하는 병원'에 의탁을 할 것이냐... 전자를 원한다면 구글지도를 켜서 당신이 있는 지역 근처의 병원 중에 본인이 전공하고 싶은 과가 있는 병원을 전부 스캔해라. 그리고 적혀 있는 Sekretäriat의 이메일로 Cover Letter(여기선 Anschreiben이라고 한다)와 이력서, 의사면허 스캔본을 PDF로 떠서 '난 한국에서 온 누구고, 이런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독일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당신네 병원이 마음에 들어서 일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느냐'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살포해라. 병원 홈페이지에 당신이 원하는 과의 Assistenzarzt를 채용 중이라면 원서를 넣어라.
채용공고가 없더라도 본인의 이력서를 돌리면서 본인을 어필하는 지원 방식을 'Initiative Bewerbung'이라고 부른다. 이력서를 보고 Chef 가 당신을 궁금해하고 관심이 있으면 Hospitation 하루나 이틀 정도 해보라고 답장이 올 것이다. 견학을 가보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말 그 병원에서 일하고 싶으면 Hospitation이 끝난 다음 '나 여기서 일하고 싶어!' 라고 바로 메일을 보내자. 물론 필자는 이런 방식으로 Hospitation은 몇 번 가봤으나, 구직에 성공하진 못했다. 자리는 없지만 일단 불러보는 경우도 존재한다... 왜지?
후자를 원한다면, 본인이 어디까지 출퇴근 할 수 있는지 생각을 일단 해봐야 한다. 매일 기차를 타고 두 시간씩 출퇴근할 수 있는가? 자동차를 구매나 리스할 계획이 있는가? 이사를 할 계획이 있는가? 가족이랑 애들은 대도시에 살아야 한다면, 주말부부를 할 수 있는가? 까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베를린 밖의 병원을 알아본다면, 당신은 브란덴부르크에 어떤 도시가 있는지 아는가?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베를린 근교 도시, 예를 들어 Nauen, Lübben, Cottbus, Finsterwalde, Oranienburg, Lückenwalde, Magdeburg 등의 브란덴부르크 도시들을 다 알 리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Job Agency를 이용하는 게 현실적이다. 이 회사들은 매칭에 성공하면 병원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우리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뜻. 그리고 매칭에 성공해야 돈을 받기 때문에 나만 오케이 한다면 무조건 일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잡아준다. 직원과 상담하면서 기차로 두 시간 이내 라던지, Auto를 살 거야 라던지, 난 이사도 가능해 라던지... 원하는 조건을 이야기해 주면 거기에 '최대한' 맞는 자리를 물어다 준다. 대표적으로 의사 전문 매칭 에이전시 Time4Change, Doc Personalberatung GmbH, Doctari 등이 있는데, 이 말고도 무수히 많은 업체들이 존재한다.
한 번에 여러 업체에 문의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특히 본인이 마이너한 과를 전공했을수록... 어차피 이 업체나 저 업체나 검색해서 물어오는 거 똑같다. 한 번에 한 업체만 이용해도 충분하다.
그리고 Linkedin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써본 기억이 없는데, 여기는 의사 채용도 공개적으로 올라오는 공고는 거진 다 링크드인에도 올라온다고 보면 된다. 내 프로필을 보고 접근하는 에이전시 직원들도 있어서 프로필을 잘 만들어두면 직업적으로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본인은 에이전시를 이용해 나를 원하는 병원에 면접을 갔고, 원하는 시작일자를 협의한 후 올해 2월부터 베를린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걸리는 Luckau라는 소도시의 병원에서 Assistenzarzt로 근무 중이다. 그리고 현재는 Linkedin으로 베를린 내 병원에서 채용공고가 뜨는지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 가능하다변 베를린 내의 병원으로 이직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누구나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다음 글에서는 에이전시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면접을 가게 되었는지를 한 번 글로 옮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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