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사 독일에서 의사하기

Hospitation을 해보자 - 그게 뭔가요? 어떻게 해요?

베를린빌런 2023. 8. 29.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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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FSP를 합격하고 4개월 간 하릴없이 기다리기만 하던 중 필자와 필자의 가족들은 한국을 1개월 간 방문했었다. 그 당시에 필자는 수련을 받았던 모교 병원을 방문하여 석사 지도교수님을 찾아뵈었었다. 그전부터 독일로 간다고 말씀은 드렸었고, 이번에는 베를린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임시면허는 나왔으며 정식 면허는 아직 심사를 기다려야 한다는 근황을 전했다. 

 

'?????? 대학에는 OOO이 XXX과 주임교수 하면서 한국에 와서 몇 번 강연도 하고 그래서 명함도 교환하고 그랬는데, 베를린은 내가 아는 사람이 없네'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한참을 머릿속에 맴돌았다. 

 

심사를 기다린 지 6개월이 넘었을 때에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어학원도 C1코스를 찾아 듣고(현재도 수강 중이다),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지도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일면식도 없고 도시도 달랐지만 이메일 정도는 보내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면허가 나오지 않아서 취업을 시켜주실 수는 없겠지만(필자의 노동허가는 베를린 내에서만 유효하다), 독일에서 앞으로 일하는 데에 조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해당 대학병원 사이트를 뒤져 비서실에 이메일을 보내보았다. 

 

'친애하는 OOO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XXX과 의사 !!!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계신 제 지도교수 $$$교수님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이렇게 연락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차 베를린에서 계속 의업을 이어나가고 싶은데, bla bla...' 

(당연히 독일어로 썼다)

 

이런 식으로 OOO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보았다. 답장이 없어도 난 컴퓨터 앞에서 글 몇자 긁적였을 뿐인데, 밑져야 본전이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OOO 선생님께서는 아주 친절하게 답장해 주셨다. 관심 있으면 프랑크푸르트에서 같이 일하자는 멘트와 함께(으레 하시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필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중히 거절드릴 수밖에 없었다). 메일 전문은 사생활 때문에라도 공개할 수 없지만, 이렇게 반가워하실 줄은 몰랐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인사말과 질의응답을 이메일로 진행하다가 넌지시 '혹시 짧게라도 Hospitation이 가능할까요?'라고 여쭤보았더니, 아주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그날로 OOO 선생님 밑에 계신 다른 Staff 선생님과 비서실을 통해 일주일 간 ??????대학 XXX과를 방문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Hospitation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견학' 말고는 한국어에서 이 단어에 대응되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견학 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visit 정도가 될텐데, 분명히 '방문'과는 다른 뉘앙스가 있다. Hospitation이 무엇인지 ChatGPT에게 물으면 다음과 같이 답해준다 (GPT 3.5)

 

한국에서 서울 소재 대형 종합병원에서 근무하시던 분들은 각 과에 외국인 의사들이 와서 참관도 하고 임시 면허 같은 자격을 받게 되면 수술도 참가 하는 등 한국의 의술을 배우러 온 외국 의사 분들을 보신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이 하는 것이 Hospitation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독일에서는 많은 외국에서 온 의사들이 FSP 시험을 준비하기 전 또는 준비 도중에 실제 병원에서 하는 독일어를 듣고 말하기 위해 Hospitation 자리를 많이들 찾는다. 필자의 경우 FSP는 이미 합격을 한 상태였고, 단지 독일에서 내 전문과 인 XXX과를 경험해보고 싶었고 독일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조금이라도 보고 오는 것이 목적이었다(이력서에도 독일 내에서 활동을 한 줄 적고 싶기도 했다). 

 

독일도 사회가 인맥 위주로 흘러간다. 기본적으로 여기 사람들은 이력서나 스펙 보다도 본인들이 아는 사람들의 추천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지원자를 믿지 않고 이 지원자를 믿는 내 지인을 믿는 느낌일까...? 사회 다른 부분에서도 이런 인맥사회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어린이집이나 사립학교 자리를 찾을 때이다. 혼자서 찾고 있을 때는 이메일을 수십통을 쓰고 매일같이 특정 어린이 집을 찾아가도 안 나오던 자리가, 그 어린이집을 현재 다니고 있는 다른 부모의 추천을 받으면 허무하다고 느껴질 만큼 쉽게 자리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것을 독일에서는 Vitamin B(Beziehungen의 앞글자 B이다)라고 부른다.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비타민인 셈. 

 

이런 인맥힙합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떻게던 독일에 와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인맥부터 구하는 것을 추천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한국에 계신 지도교수님을 통해 연줄이 닿은 분을 독일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없다면 독일에서 하나하나 인맥을 쌓아 올려야 하는데, 이 때 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 Hospitation이다.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나중에 면허가 나오고 일자리를 찾을 때 얼굴에 철판 두껍게 깔고 추천서를 부탁드릴 수도 있는 거니까...? 독일에서 의사로서 취업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내 전공이 아니더라도 Hospitation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 일단 잡아보도록 하자. 독일어도 빠르게 늘 수 있고 잘하면 인맥도 만들 수 있다. 

 

Hospitation 자리를 찾아보는 것은 필자처럼 인맥을 이용하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품을 많이 팔아야 할 수도 있다. Stepstone이나 Indeed같은 취업사이트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나라로 치면 잡코리아 같은 사이트인데, 여기에 Assistenzarzt나 Facharzt 구인글은 많이 올라온다). 보통은 각 병원 홈페이지를 찾아다녀야 하는데, 베를린에서는 대충 찾아보면 나오는 곳이 Vivantes Spandau의 정신건강의학과, 그리고 Deutsches Herzzentrum Berlin (Charite) 정도가 웹사이트에서 offiziell 하게 Hospitation에 대해 안내해주고 있다(베를린 외의 병원은 알아보지 못했다). 대도시가 아닌 곳의 병원은 상대적으로 더 찾기 쉬울 것으로 예상된다. 

 

Hospitation을 원하는 특정 과가 있다면(본인이 전공한 과거나, 전공하고싶은 과가 될 것이다) 자신이 있는 지역의 종합병원급의 해당과 비서실에 모조리 이메일을 돌려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답장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감수해야겠지만.. 결국 검색력과 적극적인 컨택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지만... 인맥이 있다면 아주 쉽게 해결이 된다. 한국에서 이어질 수 있는 인맥이 있을 지 한국에서도 얼굴에 철판 깔고 찾아보도록 하자. 

 

다음 글에서는 필자가 한 주간 모 대학병원을 견학 다녀온 후기를 써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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