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민담화

EP27. 계약서에 사인을 마쳐도 끝이 아니더라

베를린빌런 2023. 6. 29.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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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새로 이사할 집의 관리업체와 임대차계약을 끝냈다. 업체에서 계약서 두 부를 우편으로 보내주면 검토한 후 둘 다 사인을 해서 다시 업체에 우편을 보낸다. 그러고 나면 업체에서 계약서에 사인 후 한 부는 업체가 갖고, 한 부는 우리에게 다시 보내준다. 그러면 업체와 내가 양쪽 사인이 다 들어간 계약서를 하나씩 가지게 되는 것이다. 

 

12월 중순에 계약서를 전달받고는 아내와 술 한잔 하면서 그동안의 마음 졸임을 쓸어내렸다. 큰 도움 주셨던 전 세입자 분께도 집 치수를 측량하러 간다는 명분 아래 좋은 샴페인 한 병도 갖다 드렸다. 이렇게 근심걱정은 다 사라진 줄 알았다.

 

전 세입자(우리의 계약 시작일자가 3월이니까 12월 당시에는 이 분이 거주 중이었다)로부터 1월부터 집의 관리업체가 변경이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바뀌기 전 업체로부터도 1월 1일부터 관리업체가 변경된다는 내용의 안내 우편을 받았다. 당연히 3월 1일부터 우리가 들어가 거주할 예정이라고 인수인계가 될 것이라 모두가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근데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었는데도 새로운 업체에서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그래도 3월 1일부터 계약 시작인데, 2월이 되었으면 열쇠 건네받을 테어민 정도는 당연히 의논이 되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전 세입자 분은 2월 중순에 이사를 나갔고, 업체로 열쇠를 넘겨줄 시간이 안 맞아 일단 이사를 먼저 나가고 한 주 뒤에 업체에 열쇠를 건네준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담당자 이메일을 전 세입자분으로부터 받아(솔직히 이걸 업체에서 연락을 해줘야지 이사 나가는 분 한테 받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메일을 여러 번 보냈으나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전화를 걸어봐도 통화 중이거나, 근무시간임에도 근무시간 외에 나오는 ARS가 걸려있다거나(한국으로 치면 오전 11시에 전화 걸었는데 '전화 상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니 이때 다시 전화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ARS가 나오는 식이다..) 어떻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2월 말이 되었고, 우리는 이사 나가는 분이 업체 직원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그날 그 시간에 쳐들어가기로 하였다. 집 앞에 대기를 타고 있으니 저 멀리서 두 명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자기소개를 하고 우리가 3월부터 들어갈 세입자라고 하니까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 집은 나흐미터가 없는데요? 계약서가 있나요?' 라는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꾹꾹 억누르며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12월 날짜로 바뀌기 전 회사와 우리의 사인이 들어 가 있는 것을 확인하니 그때서야 'OK, You are safe.' 그동안 OO 씨에게 여러 번 이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했는데 받지 않고 이메일에 반응도 없던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더니 그제야 돌아가서 연락받은 직원에게 확인을 해보겠다고 한다. 

 

추후에 우리에게는 인수인계가 누락이 되었다고 설명을 하였지만, 정말로 인수인계가 누락이 되었는지 아니면 업체 쪽에서 의도적으로 월세를 올려 세입자를 따로 구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전 세입자의 계약을 그대로 넘겨받는 계약이어서 월세가 주변 시세보다 싼 편이었다). 여하튼 직접 타이밍을 노려 쳐들어간 덕분에, 2월 말에 열쇠를 받고 3월 한 달 동안 이사를 하고, 가구를 배송받고, 조립하고, 결국 3월 중순에 완전히 이사를 올 수 있었다(3월은 양쪽의 월세가 겹치는 달이었다. 돈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집에 아기를 재울 순 없어서 이사기간을 한 달을 확보했었다). 

 

계약서를 다 써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어선 안되는 독일의 집 구하기... 힘들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계약이라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 살 수 있다. 이렇게 해외 정착을 위해 가장 큰일이 이 땅에 오고 1년이 지나고서야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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