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베를린은 대도시기도 하고, 독일 도시들 중에서도 거의 미국 수준으로 다문화가 진행이 된 도시이고, 동양인도 많이 살고 있어서 아시아 식재료를 살 수 있는 가게도 많고, 일반 마트를 가도 청경채(Pak-Choi)나 동양배추(Chinakohl)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런 베를린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깻잎이다. 애초에 들깻잎을 먹는 곳이 사실상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독일에 사는 많은 한국분들은 깻잎씨앗을 한국에서 들여와서 직접 키워서 먹는다. 이 글을 적고 있는 필자도 고깃집 가면 상추는 손도 안 대고 깻잎쌈만 싸먹는 사람이라 독일로 올 때 깻잎씨를 가져왔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심을 것인가? 마당 딸린 집에 산다면 텃밭을 만들어서 심으면 되고, 보눙에 산다면 테라스에 큰 화분을 들여놓고 심어서 키우면 된다. 그래서 사실 우리 가족도 깻잎 씨앗 가지고 왔고, 어느 정도 이사가 끝나고 중요한 일들이 해결 되면서 슬슬 깻잎 키울 궁리를 하고 있던 와중에 집 앞에 있던 녹지가 눈에 띄었다.
알고보니 저 곳은 Vattenfall이라는 독일의 큰 전기회사에서 운영하는 공동정원 이었고, 그 회사에서 운영하는 정원은 베를린에 두 곳이 있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그 중 한 군데 바로 앞에 살게 되어서 집에서 전망도 탁 트이게 되었고, 어쩌면 우리가 가져온 씨앗을 저기 심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5월부터 오픈을 했길래, 찾아가서 상담을 해봤더니 우리가 가져온 씨앗도 심을 수 있다고 한다...!! 정원 안에 아시아 구역을 따로 만들어뒀으니 거기에 있는 화분 3개에 우리가 가져온 씨앗을 심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서 싹을 틔운 씨앗을 얼른 가져와서 심었다. 비용을 내진 않았다!
식물을 키우는 것 외에도 정원 안에 데이베드나 테이블 및 의자도 많이 있었고, 모래밭이 있어서 아기들을 데리고 와서 놀아도 되는, 주변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 구축되어 있었다.
일 주일에 두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면서 꾸준히 봤는데, 관리하는 직원 분이 물도 주시고 잡초도 없애주시고 우리 대신 키워주신거나 다름없었다. 집에서 키우는 것 보다 확실히 채광도 좋고, 관리도 잘 되어서 작물들이 쑥쑥 컸다. 3개월 정도 뒤에 첫 수확을 했다.
가든을 드나들면서 주변 아이 있는 집들과 대화도 나누고, 어린이집은 어디가 좋다느니 하는 꿀정보들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이 동네에서 20년을 사신 한국 분과 깻잎을 같이 따면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었다. 식물을 키우면서 이웃들과 교류의 장도 될 수 있는 만남의 장 역할을 이 공동정원이 하고 있었다.
늦가을이 되면 문을 닫아버려서 늦봄 - 초가을에만 즐길 수 있었지만, 집 앞에 이런 시설이 있어서 독일에서의 첫 해가 더 재밌고 여유로웠지 않았나 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더는 가볼 수 없지만, 지금도 가끔 이 공동정원의 여유로운 바이브가 생각이 나곤 한다.
'독일이민담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12. 그래서 베를린은 아기 키우기 좋은 곳인가요? (2) (2) | 2023.05.17 |
---|---|
EP11. 그래서 베를린은 아기 키우기 좋은 곳인가요? (1) (4) | 2023.05.16 |
EP9. 유학준비비자를 받다 (0) | 2023.05.12 |
EP8. 거주 등록(Anmeldung)을 하다 (0) | 2023.05.09 |
EP7. 이사 완료 (0) | 2023.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