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이나 함부르크에는 가정집에 에어컨을 달아놓은 경우가 거의 없다. 일단 여름이 습하지 않아 집 안에서는 블라인드 등으로 햇빛을 차단하고, 바람만 어느 정도 불어주면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다지 덥다는 기분을 느끼기 힘들다. 여름에 파리는 제법 많지만 모기가 거의 없다. 여기 사람들은 날이 더우면 집 안에 있지 않고 호수나 수영장 등 밖으로 나돌아 다닌다. 에어컨을 틀만큼 더위가 심한 날은 대개 1년에 일주일 이내여서 조금만 버티자는 마인드도 많다.
그래도 아기는 좀 시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으로 오시는 지인 편으로 가져온 물건은 유모차 통풍시트. 보조배터리를 USB로 연결하면 바람이 나오는 형태의 통풍시트를 구입했다. 이걸 달고 나서 부터 아이가 유모차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말은 못 해도 많이 더웠던 모양이다. 집 안에서도 기저귀 외에는 옷을 거의 입지 않고, 선풍기 두 대가 거의 상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간 동안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랄까.
한국의 한여름은 습기가 높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면, 베를린의 여름은 건식사우나를 연상시킨다. 여름 최고온도는 36도였던걸로 기억하고, 6월 정도부터 슬슬 32도 정도 되는 더위가 한 번씩 엄습해 온다. 밤이 되어도 달궈진 토지가 식질 못해서 도시 전체가 밤에도 한증막이 되어버린다. 이때 우리 가족도 밖으로 열심히 싸돌아다녔다. 코헬도 7월에 다녀왔고, 포츠담도 가고, 공원에 있는 야외수영장도 가고... 한국처럼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대형 쇼핑몰은 KaDeWe백화점, Mall of Berlin, The Playce정도가 기억이 나는데 여긴 백화점도 일요일에는 닫아서(The Playce는 일요일에도 푸드코트를 연다)... 결국은 자연의 바람을 찾아다니게 된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독일도 여름은 덥기 매한가지인데 에어컨도 없어서 한국보다 훨씬 열악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조금 덥다 하더라도 베를린의 여름은 환상적이다. 사실 정말 더운 날은 여름 전체를 통틀어 닷새 정도이고, 7월~8월 중 대부분은 30도 미만의 기온에 그늘로 들어가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날씨도 매우 좋아서 밖을 나돌아 다니기도 좋다. 여름철에 유럽 배낭여행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 때는 날이 너무 좋아서 사진도 대충 찍어도 화보처럼 나온다.
처음에 독일행을 계획했을 때는 한국에서 돈을 조금 더 벌어서 여유를 갖춘 다음 가을에 독일에 들어올 계획을 세웠었는데, 만약 9월에 독일에 왔었다면 찬란한 여름은 경험하지도 못한 채 회색 겨울을 먼저 맞이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었다면 우리 가족은 겨울이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독일의 회색 겨울은 정말 사람이 우울해지는 날씨이기 때문이다.
입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무조건 봄에 들어오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봄에 와서 한 두달 적응하고 여름을 만끽하셨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여름의 좋았던 기억으로 겨울을 날 수가 있다. 독일을 겨울부터 맞이하는 것은 정말 추천하지 않는다. 웬만한 멘탈로는 버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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